거리의 신호등맨에서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부활하다
독일의 문화 아이콘 '신호등맨'

독일 베를린에 가면 만날 수 있는 모자쓴 신호등맨(Ampelmann)은 본래 구동독의 보행자 신호등에 사용되던 캐릭터였다. 슈테어(Steher: 서 있는 빨간 신호등맨)와 게어(Geher: 걸어 가고 있는 녹색 신호등맨)로 구성된 이 신호등맨은 1961년 동독의 교통심리학자였던 카를 페글라우(Karl Peglau)에 의해 태어났다. 당시 빨강, 녹색의 단조로운 신호등을 사람들이 무시하면서 교통사고가 늘어나자 사람 모양의 심벌이 들어간 보행자 신호등을 제안했고, 수년간의 연구를 통해 신호등맨 캐릭터를 디자인하게 된다. 큰 머리에 모자를 푹 눌러쓴 편안하고 두툼한 몸매의 주먹코 신호등맨은 구동독의 수도였던 동베를린에서 첫선을 보였다. 이 친근한 캐릭터는 곧바로 독일인들의 사랑을 받기 시작했고, 교통 교육 만화영화에 등장해 어린이들의 친구이자 TV 스타가 되었다.
그러나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후, 독일 통일의 과정에서 사라져야 했던 수많은 구동독의 사물들처럼 신호등맨 또한 거리에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1994년 독일 정부가 동독의 신호등맨을 서독에서 사용하던 신호등맨이나 유로 신호등맨으로 교체하려 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신호등맨 구제를 위한 위원회'가 설립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이 신호등맨 살리기 캠페인에 동참해 폐기를 막았다. 결국 독일 정부는 무릎을 꿇었고, 그 결과 사람들은 여전히 모자 쓴 신호등맨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서독 출신의 신호등맨과 함께. 이러한 히스토리를 가진 구동독의 신호등맨을 라이프스타일브랜드로 부활시킨 주인공은 바로 서독 출신의 제품 디자이너 마르쿠스 헤크하우젠(Markus Heckhausen). 현재 암펠만사(Ampelmann GmbH)의 대표이기도 한 그는 1997년 카를 페글라우와 함께 신호등맨의 역사와 구제에 관한 <암펠만의 책(Das Buch vom Ampelmannchen)>을 펴냈으며, 1999년 첫 번째 신호등맨 컬렉션을 선보였다. 제품의 절반 이상을 구동독 지역에서 생산하고 있는 마르쿠스 헤크하우젠은 신호등맨을 '동과 서를 이어주는 다리'라고 표현한다. 세계 대부분의 도시에서 빨강, 녹새의 신호등맨은 단지 보행자들의 안전을 위한 교통 상징물일 뿐이지만, 베를린의 이 귀여운 신호등맨은 '동독과 통일 베를린의 상징'이자 가장 사랑받는 '베를리너(Berliner)'다. 신호등 속에서 걸어 나와 독일의 문화 아이콘이자 컬트캐릭터로 거듭난 신호등맨은 이미 일본에 진출했고, 곧 독일 전역에 관련숍이 들어설 예정이다. D 글/김자연, 에디터/전은경
독일의 문화 아이콘 '신호등맨'
독일 베를린에 가면 만날 수 있는 모자쓴 신호등맨(Ampelmann)은 본래 구동독의 보행자 신호등에 사용되던 캐릭터였다. 슈테어(Steher: 서 있는 빨간 신호등맨)와 게어(Geher: 걸어 가고 있는 녹색 신호등맨)로 구성된 이 신호등맨은 1961년 동독의 교통심리학자였던 카를 페글라우(Karl Peglau)에 의해 태어났다. 당시 빨강, 녹색의 단조로운 신호등을 사람들이 무시하면서 교통사고가 늘어나자 사람 모양의 심벌이 들어간 보행자 신호등을 제안했고, 수년간의 연구를 통해 신호등맨 캐릭터를 디자인하게 된다. 큰 머리에 모자를 푹 눌러쓴 편안하고 두툼한 몸매의 주먹코 신호등맨은 구동독의 수도였던 동베를린에서 첫선을 보였다. 이 친근한 캐릭터는 곧바로 독일인들의 사랑을 받기 시작했고, 교통 교육 만화영화에 등장해 어린이들의 친구이자 TV 스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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