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자도 돼?"
소이치로는 마리의 말이라면 거절한 적이 없다.
"손잡고 자도 돼?"
"얼굴 맞대고 자도 돼?"
"응."
마리가 조르고 떼를 쓸 때마다 소이치로는 선선히 승낙했다.
가끔 이렇게 말할 때도 있었다.
"왼쪽만 빌려줄게. 그러니까 오른쪽은 건들지 마."
마리는 소이치로의 왼쪽 옆구리에 들러붙어 목 부분에 얼굴을 콕 쳐박고 잠들었다. 눈을 뜨면 초점이 부열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 소이치로의 하얀 볼이 있었다.
벌렁 누워 자던 소이치로가 가끔은 모로 누워 웅크린 채 들러붙어 있는 마리의 무릎 사이로 한 발을 밀어 넣고서 말했다.
"우리 마리, 아직 꼬맹이네."
둘은 그런 자세로 꼼짝도 하지 않았다. 먼저 잠드는 건 거의 소이치로였다. 마리는 소이치로의 규칙적인 숨소리를 들으면서 이 세상 누구보다 오빠가 좋다,고 생각했다. 오빠는 자기를 지켜준다고.

... ...

갓 목욕을 하고 잠이 든 소이치로에게서는 비누 냄새가 났다. 목욕을 하지 않았을 때는 버터 우유와 풀 냄새가 섞인 듯한 냄새가 났다.

_ 에쿠니 가오리의 '좌안(左岸) 마리 이야기' 中에서


영화 '북극의 연인들'에 나오는 안나와 오토는 회문으로 된 이름을 가진 이복남매로 서로의 운명적인 삶이 자신들의 이름처럼 순환되면서 결국 끝에 다다른다.
어쩌면 그들이 진짜 남매가 아닌 것이 비극의 시작이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드라마 '하늘에서 내리는 1억개의 별'에서 유코와 료는 서로가 친남매인 줄 모르고 운명적으로 연결된 사랑을 이어나가지만, 결국 비극을 맞이한다.

같은 이야기는 아니지만,
남매들이 갖고 있는 그러니까 엄밀히 말하면 오빠와 여동생이라는 관계에서 피어나는 사랑이 적잖은 동경을 넘어서 정말 '사랑'이 될 수도 있는 건가 싶다.
물론 금기시된 이야기이지만, 적어도 에쿠니 가오리가 써내려간 이야기에서 보여지는 오빠 품에 기대어 잠든 마리를 보자니 꽤나 질투가 난다.

후훗 그래서 많은 한국인들이 자신의 연인을 가족의 관계처럼 '오빠'라 부르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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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강가에 있는 나, 오른쪽 강가에 있는 너... ...

너와 나의 눈동자에 비친 건 같은 풍경일까?

 
_ 좌안 / 에쿠니 가오리

 

오른쪽 강가에 있는 나, 왼쪽 강가에 있는 너... ...

너와 나의 눈동자에 비친 건 같은 풍경일까?

 

_ 우안 / 츠지 히토나리



090513 @ 교보문고 광화문점

냉정과 열정 사이 이후, 에쿠니 가오리와 츠지 히토나리...
그 둘이 다시금 함께 책을 내었다.

우연히 그곳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의 사인을 받고 싶었던 건 아니다.
정말 그들이 보고 느낀 것, 그리고 그들이 써내려간 이야기...
과연 그 사람들이 누구일지 궁금했다.
나란히 앉아 서로의 책에 열심히 자신의 이름을 써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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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있다고 꼭 고독 속에 있는 것은 아니다. 내가 말하는 고독은 물론 '다른 사람이 없는 상태'를 의미하지만 이 순간 나는 나 자신을 벗삼고 있다. 반면 내가 혼자 있든 누구와 함께 있든 나 자신이 내게 결핍되어 있을 때, '내게 결핍되어 있는 그 누군가'가 다름 아닌 나 자신일 때, 이런 상태는 고립이다. (반대로 사랑은 상대방이 거기 있을 때조차 그가 그리운 상태를 말한다.) 고독 속에 있다는 것은 상대방이 거기, 내 안에 있다는 확신을 느끼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상대방과 내가 모두 결핍되어 있는 단절도 있다.

[from 글렌 굴드, 피아노 솔로 / 미셸 슈나이더]

#1.후훗..너무나도 '하이데거'-물론 번역본에서의 표현일테지만-스러운 표현에 ^^

#2.'고독'과 마주한 순간이 얼마나 내 자신에게 기쁨이 될 수 있는지 우리는 좀더 알아나가야 할 듯.
항상 나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아는 것이 중요하며,
안으로 밖으로 자신을 살펴보아야 하는 이유이다.
그리고 어쩌면 이만큼 미치지 않으면 그 무엇도 제대로 해내지 못할지도 모른다.

#3.새삼...굴드의 인생에 나를 비춰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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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래스카, 바람 같은 이야기 _ 호시노 미치오 / 청어람미디어

우연히 책 제목을 들은 뒤,
얼마 전에서야 한권 사들어 라디오 한 프로그램 지나가는 사이 다 읽어버린 책.
정말 이 책만큼은 내 책장에도 내 마음에도 오래 남을 거 같다.

이 책은 사진집으로 야생동물 사진작가인 호시노 미치오의 전기와도 같다. 그가 렌즈로 들여다보는 알래스카의 자연과 사람들의 모습에서는 어떤 눈높이도 느껴지지 않는다. 40여년 동안 알래스카에서 에스키모로 살아가는 백인 밥 율의 이야기로 시작된 이 책은 그가 생을 마감하는 그 순간까지 그 자신 본연의 모습과 닮았다.
이 책에서 말하는 알래스카의 자연과 현대화에 접어드는 알래스카에 대한 이야기는 결국 인간과 자연이 가진 우연성과 그 안에서 결국 숙명적으로 살아가는 인간과 자연의 모습을 말하고 있다.

호시노 미치오는 책에서 '마음의 지도'라는 표현을 종종 쓰곤 했다.
마음의 지도는 곧 포용력이자 열린 생각이다. 한번도 내가 태어난 곳을 벗어난 적이 없더라도 마음의 세계 지도는 누구보다 클 수 있다는 것이 호시노 미치오의 생각. 그 생각에 많이 공감한다. 경험을 많이 하는 것뿐 아니라 그 경험을 느끼고 받아들이는 자세가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기에.

언젠가 꼭 한번 가보고 싶다고 마음 속 지도에 새겨놓았던 알래스카가 단순한 둘러보기 혹은 하나의 색다른 체험의 공간이 아니라 내 자신이 살아가는데 있어 존재의 이유가 무엇인지 한번쯤 깨닫게 해 줄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p.30 아무것도 없었던 시대에는, 인간은 자기 생활권 바깥 그 어디에서도 자극을 찾을 필요가 없었던 것이 아닐까. 그것은 일상적인 생활을 하다보면 저쪽 편에서 이리로 날아드는 거였어.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찾았던 것은 자극보다는 휴식이었어.

p.104 작은 장작불이 흔들리고 있다. 타닥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나의 마음을 풀어준다. 뜨거운 커피를 마시면 더는 아무것도 필요 없다.
역시 묘한 거야, 사람의 마음이란. 아주 자잘한 일상에 좌우되면서도 새 등산화나 봄기운에 이렇게 풍족해질 수 있으니.
사람의 마음은 깊고, 또 이상할 만큼 얕다. 사람은 그 얕음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p.183 이 샤먼 아주머니는 종종 운수가 나빠진다는 말을 했다. 어떤 행동이 왜 안 되는지를 물으면 '운수가 나빠지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람의 운은 일상생활 속에서 늘 변해가는 것이라고 한다. 그 운을 좌우하는 것은 그 사람을 둘러싸고 있는 것들과 어떻게 관계하느냐에 있는 것 같다. 그들에게는 '자연'이 바로 그것이다.

p.204 자연은 강한 자만이 살아남아 자손을 남긴다고 한다. 이리의 습격을 받는 카리부 무리는 미처 도망치지 못하는 약한 놈을 희생시켜서 무리 전체의 강인함을 유지한다고 한다. 지극히 이해하기 쉬운 설명이지만, 자연은 정말 그렇게 교과서대로 움직일까? 의외로 우연성이 지배하는 부분이 있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자연은 약한 자까지도 포용해버리는 넉넉한 품을 가지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p.225 사람은 늘 무의식적으로 자기 마음을 통해서 풍경을 바라본다. 오로라의 신비한 빛이 들려주는 무언가는,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 속 풍경에 벌써부터 있었던 것이리라.


끝으로...지난 토욜부터 머리 속을 맴도는 생각은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위하여 살아가느냐'였다. 물론 나 자신을 위한 삶일테지만... 이 책을 읽고난 일욜부터는 '어디서 살아가느냐'란 호시노 미치오의 물음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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