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데이빗 소로는 자기 집에 의자를 세 개 두고 있다고 했지요.」에드가 한마디한다.

「첫 번째 것은 고독을 위해서, 두 번째 것은 우정을 위해서, 세 번째 것은 사교를 위해서라고. 하지만 나한테는 고독을 위한 것 하나밖에 없어요. 침대까지 친다면 우정을 위한 두 번째 것까지는 있는 셈이겠지. 하지만 여기에서는 사교 따윈 없어요. 그런 짓이라면 내 택시하고 실컷 했으니까.」


                                                         - 신탁의 밤, 폴 오스터.

[from y.     ]


#1. 내 방에 놓인 2개의 의자와 침대는 차치하고 난 3병의 와인에 대해 말하고 싶다.

#2. 오랜만에 녀석에게 안부 인사를 전하며, 다 지나빠진 생일에 대해 조금 투정을 부려본다.
녀석은 내 생일을 잊을 수 없는 이유에 대하여 나우누리 시절 때 '아이디'와 함께 기억한다고 말한다.
갑자기...그렇게 오래된 기억을 누군가와 함께 나누고 있다는 것이 참 기쁘고, 고맙더군.

이번에 만나게 되면 정종 대신 와인을 마시기로 했다.
마침 내 방에는 3병의 와인이 굴러다니고 있다.
작년 봄 독일에서 사 온 아이스바인, 호주에서 사 온 레드 와인(부디 쉬라즈이길) 그리고 파리에서 선물받은 레드 와인.
다음 주쯤 녀석과 학교 앞 공원에 앉아 찬 바람과 함께 와인잔을 기울일 수 있길 바랄 뿐...
어쨌든 저 3개의 병 중 한 병은 녀석의 몫이 되어 버렸다.

#3. 사실 좀 더 많은 와인들을 갖고 몇몇의 친구들과 치즈 하나 놓고 작은 파티를 열고 싶었다.
하지만, 나를 비롯한 친구들이 바쁜 탓에 더욱이 어떤 사람과 함께해야 이 좋은 것들을 나눌 수 있을까하는 고민이 앞서 파티는 결국 열 수 없었다.
그런데 오늘 읽은 폴 오스터의 글귀로 인하여 그 고민이 모두 사라졌다.

아마 주말쯤 올라오게될 친구와 함께 또 하나의 와인을 마셔야 할 거 같고... ^^
마지막 한 병은 제주도에서 끝내지 못했던 파티를 위해 그 친구들과 마셔야 할 거 같다.

#4. Oracle Night의 한 구절이긴 하지만, 폴 오스터란 이름을 들으면 항상 떠오르는 한 친구가 있다.
혹시나 하고 녀석에게 생일 선물로 받은 「우연의 음악」을 펼쳐보니,
역시나 첫 장에는 녀석의 메모가 있었다.

"늦었지만 생일 축하... 이 책이 네가 어른이 되는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 건강하고..." -xx

후일 책을 다 읽고 녀석에게 화를 냈던 기억이 떠올라 그때도 지금도 어른이지 못한 내 자신이 부끄럽다.
녀석에게 또 이런 선물을 받을 수 있을런지...
...녀석도 아직까지 아무 소식 없다.

그리고 정작 녀석과 나눌 와인도 남아있지 않고.

#5. 내가 가진 3병의 와인은 모두 우정을 위한 것으로 녀석들이 오래전 나우누리 때부터 함께한 사람들이라는 것에...
어쩌면 이 녀석들이 지금 잠시 나에 대해 잊었다 할지라도...
오늘의 이야기처럼 내 아이디만으로도 내 생일은 결코 잊을 수 없는 이유로 그들의 기억에 내가 남아있을 거 같다.

내가 가진 와인이 단 한병 뿐이라 내 목만을 축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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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다른 나라에서 현관문 같은 사소한 것에 유혹을 느낄까?
왜 전차가 있고 사람들이 집에 커튼을 달지 않는다는 이유로 어떤 장소에 사랑을 느낄까?
터무니없어 보이지만 우리 삶에서도 비슷한 반응을 쉽게 찾아낼 수 있다.
우리는 사랑의 감정이 상대가 빵에 버터를 바르는 방식에 닻을 내리고 있다는 것을 깨닫기도 하고,
상대가 구두를 고르는 취향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움찔하기도 한다...
우리가 외국에서 이국적이라고 여기는 것은 우리가 고향에서 갈망했으나 얻지 못한 것일 수도 있는 것이다...


한글 제목으로는 무언가 2% 부족한 이 책의 원제는 'The Art of Travel'.

너무 박식한 나머지 무작정 쏟아내는 건 아닌가 싶을 정도의 거부감이 들지만,
그래도 그가 밉지 않다.
이름만큼이나 보통스럽지 않은 그만의 시각이 책 속 곳곳에서 묻어나기에...

언젠가 그렇게 가벼운 배낭 하나 메고 여행책자 하나 없이 무작정 떠났던 여행에서 커다란 닻을 본 순간
'내 여행은 이제서야 닻을 내렸다'란 생각이 들었는데,
그 역시 소소한 삶 속에서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다는 것에 깜짝 놀랐다.
...이미 보통은 내 삶에 닻을 내렸던 것인가??

누군가의 감정에 닻을 내린다는 표현은 꽤나 그럴싸하다 ^^

후훗...이젠 그 닻을 다시 한번 올려야 하지 않나 싶다.
정말 오늘은 어디론가 그렇게 무작정 떠나야만 했을 거 같은 날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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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몸에서 가장 정신적인 곳이 어디냐고 누군가 물은 적이 있지.
그때 나는 어깨라고 대답했어.
쓸쓸한 사람은 어깨만 보면 알 수 있잖아.
긴장하면 딱딱하게 굳고 두려우면 움츠러들고
당당할 때면 활짝 넓어지는 게 어깨지.
목덜미와 어깨 사이가 쪼개질 듯 저려올 때면,
내 손으로 그 자리를 짚어 주무르면서 생각하곤 했어.
이 손이 햇빛이었으면.
나직한 오월의 바람소리였으면.
처음으로 당신과 나란히 포도를 걸을 때였지
길이 갑자기 좁아져서 우리 상반신이 바싹 가까워졌지.
기억나?
당신의 마른 어깨와 내 마른 어깨가 부딪친 순간.
외로운 흰 뼈들이 달그랑, 먼 풍경소리를 내는 순간


한강 님의 <내 여자의 열매> 중에서 ‘어깨뼈’ 였습니다.

가만히 보고만 있어도 눈물나게 좋은 이 계절이,
모든 사람에게 환하지만은 않을 거라 생각하면,
마음이 시려옵니다.
당당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잔뜩 움츠러든 어깨로 걷는 사람을 볼 때처럼 말이지요
그런 사람을 만나면, 비록 타인이지만
그 어깨를 가만히 짚어주고 싶어져요.
어깨뼈를 부딪히며 사는 사람들은 더욱 그렇지요.
이 손이 햇빛이었으면, 나직한 바람이었으면...

어제 저녁, 배미향씨의 '길에게 길을 묻다'에서는 이 글과 함께
Sunshine on my shoulders(John Denver)가 흘러나오더라는...
메마른 어깨뼈가 부딪히며 내는 먼 풍경소리로
그렇게 서로를 안고 살아갈 때,
조금쯤 쓸쓸함도 줄어들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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