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아직 끝나지 않았다.


(여) “어떻게 된 거야?”

입 밖에 내는 동시에 한없이 남루한 질문임을 깨닫는다.
태오는 대답이 없다.
그가 나를 무시한다고 생각하니 핏대가 휙 솟구쳤다.
태오가 몸을 돌렸다. 얼굴이 까칠하다.
그의 존재감으로 내 좁은 방 안이 꽉 찬다.

(남) “잘 지냈어요?”

(여) “전화를 해야지. 사람 걱정하는 거 몰라?”

(남) “미안해요. 걱정하게 해서.”

(여) “미안할 일을 왜 하는데? 내가 그렇게 만만해?
        진짜 헤어지고 싶어?”

(남) “그런거 아니에요. 그냥 머릿속 좀 정리하느라고.”

(여) “어, 그러셨어? 너 정리하는 동안에 나는 입 벌리고 너 기다리라고?
       어디서 죽었는지 살았는지 안달복달걱정하면서?”

(남) “..... 정말 나를 걱정한거였어요? 걱정하고 있다는 그 느낌이 싫었던 게 아니고?”

맥이 탁 풀렸다. 사랑이 저무는 느낌은 어떻게 오는가.
누군가와 이별할 순간이 도래하면 엉뚱하게도 오래전 운동회 때가 생각난다.
줄다리기 시합. 청군과 백군이 동아줄 하나를 마주 잡고 팽팽히 대립하고 있다.
그때 불현듯 한쪽에서 동아줄을 휙 놔버린다.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모든 것이 덧없다는 듯.

그럼 다른 한쪽은 어떻게 될까.
게임의 승자가 되겠지만 그걸 진짜 이겼다고 말할 수 있을까.
게임이 끝나버렸는데 누가 승리자이고 패배자인지를
가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적어도, 지금은 아니다. 이대로 줄을 놓쳐버리기에는,
나는 지금 너무 힘겹다.

-정이현의 <달콤한 나의 도시> 중에서 -

이제는 누군가의 걱정이 부담스럽고, 나보다 그사람을 더 생각하고 있는 내 자신이 싫어지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그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마음놓고 걱정을 해줄 수 있는 거, 그 걱정이 싫지 않은 거, 사랑할 때만 누릴 수 있는 특권 아닌가요?
여전히 나보다는 그사람이 더 걱정된다면... 아직은 서로에게 연결된 그 줄을 놓지 마세요.

***

오랜만에 김창완 아저씨의 '사랑, 아직 끝나지 않았다'를 들었다.
다른 때와 달리 유난히 머리 속에 남는 책 제목 탓에 이 시간에 일부러 검색까지 해봤다는 ㅋ

'사랑이 머무는 풍경'...발 킬머가 장님으로 등장했던 영화...
고등학교 때부터 가끔 함께 영화를 봤던 그 친구와 압구정에서 보았던 영화.
옆에서는 '쉬리'가 상영 중이었으나, 우린 한국영화~ 흥~ 콧방귀를 뀐 채..옆으로 스스스~
딱 한달 뒤, '쉬리'를 보지 못한 걸 아쉬웠했던 기억이 난다 ^^;;

지금은 그 친구와 그다지 어떤 관계라는 걸 말할 수 없는...그저 과거의 한 사람 정도로만 기억된다.
아마 내 학창시절 라이벌로 지금도 간간히 자극이 되어주곤 하는 녀석이지만,
이제는 '친구'라는 말도 참 서먹할 뿐이다.

사람의 관계에 대해 많은 생각들 중,
이제는 '머무는 풍경' 보다는 '저무는 풍경'이 더 먼저 떠오르는 건...
아마도 더 이상 많은 관계들이 그렇게 많은 의미를 부여하지도 못할 뿐더러..
지금껏 쌓아왔던 그 관계들조차도 덧없음에 지쳐버려 스스로 줄을 놓아버리는 순간이 잦아지기 때문일 것이다.

줄을 놓는다는 것,
사실 그것은 내가 놓겠다는 결심에 의해 놓아지는 것이 아니라...
시나브로 그 끈이 그저 헐거워져서 언젠가 끊어진 것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들은 그 끈이 놓아진 것조차 알지 모른 채...
그 사람을 추억하며 살 뿐이다.

그래서 그 누구도 후일에는 좋은 기억으로만 남게된다.

'Mine > 그 남자 그 여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0) 2006/12/14
아는 여자, 안다는 것.  (0) 2006/11/20
사랑은 끝없는 약속 같은 것  (0) 2006/10/18
사랑이 ... 풍경  (0) 2006/09/06
회사 건물내 Cafe  (0) 2006/05/05
냉정과 열정 사이  (0) 2006/05/05
◀ PREV | 1 | ... 192 | 193 | 194 | 195 | 196 | 197 | 198 | 199 | 200 | ... 259 | NEXT ▶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259)
Mine (100)
Cinema (53)
Book (9)
Travel (48)
Stuff (42)
English (3)
Wish List (4)

글 보관함

Total : 90,082
Today : 5 Yesterday : 32